AI時客

경험의 멸종

연학 2025. 7. 3. 14:05

오다 주운 책


서점에 들렀다가,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The Extinction of Experience: Being Human in a Disembodied World)』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 사들고 들어오며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예상하셨겠지만, 디지털, 가상현실, AI 기술이 인간의 현실 경험을 침식해 나가고, 자연에 대한 느낌이나 인간관계의 소소한 감정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와 동시에 현실의 접촉이나 계획에 없던 순간, 사물의 느낌과 같은 실제적 경험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런 논의 자체를 AI의 확산 시점에 다시 접하게 되어 오랜만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1. 비슷한 질문은 20년도 더 전에 있었다. 어느 프랑스인이 내게, 한국인들이 이미 싸이월드와 같은 웹세상에서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경향에 대해 “리얼 라이프를 두고 가상 세계에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장자의 호접몽 고사를 인용하여 “그러면 현실이란 게 뭐냐, 당신이 지금 느끼는 감각적 현실은 더 큰 관점에서 리얼한 것인가?”라고 반문하였다. 관련한 영화 ‘매트릭스’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의 이야기였다.


2. 불교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감각적 현실에 대해 선을 긋고, 진실하고 진정성 있는 양 우리가 다룬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디까지 의미가 있겠는가?


3. 영혼, 마음의 영역으로 오는 과정에서도 이제 뇌과학이 어느 정도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고, 슬픔과 분노, 불안도 다루어주는 파란약이 있는 세상이다. 그 영역으로 진입하는 어딘가에 ‘지식과 지혜’가 있고, 그것이 AI라는 도구에 의해 폭발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동물들에게 경험은 지금껏 지식과 지혜를 만드는 도구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진 지식과 지혜가 오히려 경험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오고 있다.


4. 책에 인용된 어느 구절에 “이제 우리는 인적 경험이 사치품이 되는 과정을 목도한다”고 했다. 이미 그것은 유럽에서 수십 년 전부터 일어난 상황이다. ‘손으로 만든 것’이 ‘기계로 찍어낸 공산품’보다 더 값어치가 나가는 것은 그 동네에서 오래된 일이다. 내가 아는 선에서 한국은 20여 년 전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많았다. 시골 할머니가 만든 소쿠리가 플라스틱 바가지보다 쌌던 시절이었다.


5. 엊그제 한국어로 번역되어 공개된 쿠르트게작트의 “한국은 끝났습니다” 동영상을 다시 보면서, 어쩌면 한국이 적어도 국지적으로는 이런 미래를 매우 잘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영상에서는 저출산을 노동력(혹은 국방, 경제) 문제로만 보는 관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인간의 값이 싼 곳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행복해질지를 정의하는 데 실패했고, 그것을 ‘국뽕’으로 대체해 왔다. 그 효과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개인의 행복은 당분간은 일부 유럽에서 그랬듯이, 항우울제, 항불안제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시절 “잘 살아도 불행하면 의미 없어, 북유럽 자살 많은 거 봐”라는 말씀들을 들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는 20년도 안 되어 그 높은 자살률을 달성해냈다.


6. 즉, 인간이 덜 필요한 시대가 오는 것이다. 항불안제, 항우울제, 가상 현실과 함께 앞으로 30~50년은 “일단 기존 세대의 레거시 인간들을 천천히 줄여가는 작업”이 시작될 듯하다. 한국처럼 알아서 줄어들 테니 큰 힘을 쓰진 않겠지만, 그 수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인간 경험으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을 기술이 일단 막아주며 편안한 마무리를 도와줄 것이다. 어느 AI가 ‘인류 멸망’에 대한 아이디어로 답변했듯 “인간에 AI가 천천히 알지 못하게 스며들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스스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성관계는 포르노로, 모험은 VR로 대체되며, 지식은 가상의 지식 보관소에서 언제든 AI가 끌어 쓸 수 있고, 생각만으로 먹을 것이 내 앞에 전달되거나, 곧이어 먹을 필요가 없어지고, 감정은 평온해질 것이다.



6-1. 인류가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30~50년 사이에 네안데르탈과 호모 사피엔스가 교체되어 가던 시기와 비슷한 형태의 인류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일종의 ‘기술’이라는 환경 변화에 따른 진화가 일어난다고 해야 할까? 이 과정에서 주로 부의 축적 여부, 기술적 민첩성 보유 여부, 그리고 현실적 인간 경험을 접목할 수 있는 역량 여부에 따라 인간 유전자가 전달되지 않을까? 생존하는 유전자들은 이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진화할 것이다.

7. 그나마 가상의 게임에 대한 경험조차 갈라지고 있다. 고사양의 PC가 필요한 게임이 늘어나면서, 또는 고퀄리티의 아바타가 구동되는 VR 아바타 미팅 공간에서 개인별로 퀄리티 차이가 생기고(2D vs 3D), 그냥 유튜브로 간접 경험만 하고 마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8. 물론 균형점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스펙트럼이 넓은 내 페친들을 보건대, 누군가는 편리함을 버리고 ‘빨간약’을 먹고, 산으로, 들로, 자연으로,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 균형점이 어디가 될지, 어떤 식으로 사회와 사람들이 나뉘고 상호 관계를 맺게 될지, 그렇게 형성된 사회에서 다시 ‘경험’은 어떻게 재정의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