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時客

전화 체인 모델과 조직의 환각

연학 2025. 7. 13. 17:15

리더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귓속말 게임 혹은 여러가지 변형 형태의 메시지 전달 게임이 있다.
한국에선 "가족오락관" 시절의 벽보고 말하기도 있고, 여러 단계의 벽을 쳐 놓고 그림으로만 소통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의도했던 답변과는 완전히 다른 엉뚱한 대답이 나오게 되는 재미를 느끼는 게임이다.

"오늘 짜장면 먹었어."가 마지막에서는 "엄마랑 공원에서 축구했어" 같은 식으로 전달되는 엉뚱함이 묘미랄까?

미국에선 전화기 놀이라고 하는 어린이들 게임이 있었던 것 같고,

이 놀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모델이 연구되었다고 한다.

 

보고라인을 타고 정보가 올라갈수록, 사실은 누락되고, 수치는 정제되며, 리스크는 완곡해진다.
이른바 ‘전화 체인 모델(Telephone Chain Model)’.
정보가 ‘계단식 보고 체계’를 따라 올라가는 동안
정확도는 떨어지고, 의도는 사라지며, 메시지는 가공된다.

 

기업에서, 공공기관에서, 우리는 수많은 문서를 ‘보고용으로’ 만든다.
팀장은 팀장의 언어로, 부서장은 부서장의 톤으로, 최종적으로 임원이 보는 브리핑은 “결론만” 남는다.
그 사이에 중요한 문맥, 데이터의 한계, 판단의 조건들은 사라진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과장하자면 위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서다.
과도한 문제제기는 피하고, 성과는 강조하며, 판단을 유리하게 만들고 싶은 심리가
정보의 진실을 ‘전략적으로 요약’하게 만든다.

 

또 굳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위해 "사소한 데이터를 넣어 노이즈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끼어 있다.

"초등학교 학생에게 전달하듯 보고서를 쓰라"는 어느 "하이테크 기업의 CFO" 이야기도

그 원 뜻은 최대한 좋게 해석 했을 때 이런 맥락이 되지 않을까 한다.

 

최근에 <<戰國策>>의 이야기를 듣게 되어 재미삼아 넣자면,
전국 시대 제 위왕에게 추기라는 당대 정치가가 있었는데, 나름 외모가 훌륭했다 한다.

그런데, 자신의 외모를 판단하기 위해 최고 미남으로 알려진 서공이라는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아내와, 첩, 손님에게 "나와 서공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를 물었다. 당연히 모두 추기가 낫다고 답했다.

서공이 자신보다 더 외모가 낫다는 것을 알았던 추기는, 자신을 칭찬한 사람들에게 각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을 알았고.

이 이야기를 왕에게 들려주며, 왕을 치켜세우는 신하들이 아첨 때문에 진실을 전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삼도록 하였다.

아첨의 사례가 한 두 곳 뿐이겠는가? 하다못해, 최근에는 GPT도 아첨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OpenAI가 인정한 판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리더십의 의사결정을 구조적으로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실제 사례는 많다.
보잉의 737 MAX 사고는, 엔지니어가 지적한 자동조종 문제를 임원이 축소 보고한 결과였다.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도, 내부 기술팀의 경고가 윗선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전형적인 전화 체인 실패였다.

보고가 두 세 단계만 올라갈 때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하물며 최고 의사 결정자에게까지 그것이 전달될까?

 

보고서를 ‘있어 보이게’ 만드는 데 집중하게 되고, 실제 리스크는 의사결정자의 눈에 닿지 않는다.

파워포인트에 익숙해진 나머지, "텍스트가 너무 많은 파워포인트"를 읽지도 않고,
내용이 눈에 안들어온다며 보고 받기를 거부당한 사례도 많다. 

누가 바보인지 모르겠다며 나오는 팀장과, 부하직원들.

 

최근엔 AI, 특히 거대언어모델(LLM)의 hallucination(환각) 현상이 화두다.
AI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진짜처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틀림없는 경고다. 하지만 이 질문은 과연 공정한가?

 

사람 기반의 보고 체계는 AI보다 훨씬 더 오래, 더 자주, 더 무책임하게 환각을 생산해왔다.

AI는 적어도 “왜 그렇게 대답했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프롬프트, 소스, 모델 버전까지 모두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인간 보고는 흔적이 없다.
요약한 사람도, 의도를 바꾼 사람도, 책임지는 이를 추적하기도 어렵다.

그 어느 버전에서, 보고 버전에서 달라지는 것이 있어도.

시작이나 중간 부분까지와 최종 보고의 스토리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업에서 종종 경험했다.

책임? 보고자에게, 외주 컨설팅에 넘기면 된다. "저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어요. 더 중요한 맥락이 있었어요." 

 

결국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것은 이거다. 리더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보고서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의 심리와 정치, 그리고 그 너머의 공기를 읽고 있는가?

 

AI가 만들 수 있는 환각은 문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온 의도된 환각, 그것이 LLM보다 덜 위험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