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이번 12월 3일 친위쿠데타로 누군가 문학 작품, 연극을 쓴다면 수십개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한 여인이 의도치 않게 대통령의 부인까지 오르게 된 이야기. 사시에 번번이 낙방하던 고시생이 늦깎이 검사가 되어 스타덤에 올라 대통령까지 되었으나, 준비되지 않아 스스로 멸망하게 된 이야기. 비상계엄의 선포 과정에서 벌어진 무속의 의존. (이것은 마치 맥베스의 세 마녀를 떠올리게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항쟁과, 친위쿠데타 실패로 이어지는 과정. 하나하나 버릴 것 없이 조선 시대 사극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요사이 관심을 갖는 것은 무속에 대한 부분이다. 무속인들과의 연루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영부인과 그 주위에 있던 건진법사, 천공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제기되었다. 여기에 정보사령관 직을 물러난 장군이 스스로 명리를 공부하고, 전국의 무속인을 수십차례 만나가며 쿠데타를 준비하는 과정도 혀를 차게 한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 지, 이 사람, 저 사람이 나를 배신하지는 않을 지 물어봤다는 뒷이야기도 참 어이가 없다. 12월 3일 10시 30분이라는 시간이 가진 한자 王으로의 관계는 유치해서 차마 들어주지 못할 정도다.
그렇게 보면, 우스운 생각도 든다. 신점이나 무속이 그렇게 맞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쿠데타가 실패한 과정의 원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 점을 치는 사람의 문제였던가? 신력이 떨어지는 무속인이 점을 쳤기에 예언이 잘못되었거나, 명리 해석의 역량이 떨어지는 이에게 자문을 구한 탓에, 잘못된 해석을 믿은 것이 잘못인가?
- 신점이나 무속 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함께' 고려해야 했는데, 신점에만 과하게 의존하여 다른 요소들의 계획과 검토를 소홀히 한 것이 문제였는가? 즉, 바람이 나에게 유리하게 분다하여도,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의 지혜가 모자랐던것인가?
- 신점의 예언이 "쿠데타가 성공할 것이다"라고 말하거나,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 그 목적에서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었고, 천신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그 운을 사용하였기에 벌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인가?
- 신점의 예언이 "될 것, 안될 것, 조심할 것"까지 가르쳐 주었는데, 자기 멋대로 긍정적인 해석을 하여, 쿠데타를 실행에 옮긴 것이 잘못되었던 것인가?
그리고, 반대로 신점이나 무속이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그 이유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불교, 힌드교 같이 정통의 “신”을 따른 것이 아니라 사이비, 이단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인가? 십자군 원정, 이슬람의 근본주의 무장세력도, 남녀차별을 비롯한 사회적 억압과 의사 결정도, 공산주의나 파시즘, 나치즘 같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람을 해하는 결정도 결국은 무속에 의존하는 것과 같은 류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공산주의 방식으로 해낼 것이라 했던 대약진운동, 문화혁명도 같은 류 아니었을까?
- 우리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따라 생각하여”, 글로벌 보편 종교,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것 조차도 실재에 의한 판단이 되는 것이 아니며, 정치나 권력, 경제의 영역은 종교의 선악 윤리, 신, 예언과 애시당초 무관한 것이라 애당초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 종교를 믿는 이들은 무엇인가?
- 그래서, 결과적으로 단순히 계획을 수행하는 인간의 역량이 모자랐던 것인가? 즉, 상황판단, 결단의 시기, 집행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 준비 부족, 군부를 장악하여 행동하게 할 수 있는 권력이나 무력 부족하였거나, 노력이 부족하여, 게을러서 그냥 실패한 것이 아니었던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다.
그런데, 무속 의존은 단순히 미신적 행태로 치부하기에는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의 델피 신탁은 전쟁과 식민지 건설, 정치적 결단의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마의 황제들 역시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점쟁이들의 조언을 구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히틀러는 점성술에 깊이 빠져 있었으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영부인 낸시 레이건을 통해 점성술사의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이번 쿠데타 시도의 실패는 결국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재미있는 단서를 준다. 극중 맥베스는 세 마녀의 예언을 듣고 왕위 찬탈을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예언 때문이 아니라, 예언을 자신의 욕망에 따라 해석하고 실행한 방식 때문에 실패한다.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도 시사점이 큰데, 종교적이건 이데올로기적이건, 또는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건 간에, 결정의 근거가 되는 '징후'나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하느냐가 핵심이라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무력을 동원한 정치적 변혁 시도에서 '신의 뜻'이나 '초자연적 계시'가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15세기 프랑스의 잔 다르크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백년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고, 19세기 중국의 태평천국운동은 홍수전의 종교적 환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성패를 가른 것은 단순히 그들이 신비적 체험이나 예언에 의존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성공한 혁명과 실패한 쿠데타의 차이는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현실적인 힘의 균형을 파악하고 있었느냐에 달려 있었다. 예를 들어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파트와(종교적 결정)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결정을 정당화했지만, 이는 실제로 매우 현실적인 정치적 계산에 기반한 것이었다. 종교적 권위는 정치적 결정의 포장일 뿐이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도, 비합리적 요소가 갖는 이중적 성격은 한편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심리적 지지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해도 말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런 비합리적 요소들이 단순히 무속이나 미신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세기의 전체주의 운동들은 겉으로는 과학적 합리성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준종교적인 열광과 맹신에 기반하지 않았던가?
이번 친위쿠데타 시도의 실패를 단순히 무속적 조언에 의존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만 몰아가는 일부 “흥행 위주”의 언론 몰이에 반감이 드는 이유다. 국민을 불행에 빠뜨리는 일을 도모했다는 데에 집중해야 하고, 그것이 "매우 다행히도" 실패했다는 데에 집중하였으면 한다.
그럼에도 한 번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왜 현대의 정치 행위자 혹은 조직의 의사 결정자들은 여전히 비합리적 요소에 의존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실제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이는 막스 베버가 제기한 '현대의 탈주술화' 테제와도 맞닿아 있다.
베버는 근대화 과정에서 세계가 점차 합리화되고 주술적 요소들이 사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술자리에서 “T”라고 불리는 이들과 이야기를 해도 비슷한 입장을 듣게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여전히 정치적, 또는 조직 내의 의사 결정은 비합리적 요소에 얽혀 있으나, 다만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시장의 신호'나 '빅데이터의 예측'을 맹신하는 경향은 어떠한 가? 겉으로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신탁이나 예언과 유사한 기능을 하지 않는가? 도리어 이것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을 정당화하는 외부적 권위로 작용한다.
즉, 이번 쿠데타 시도의 실패는 단순히 무속적 조언에 의존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권력 관계와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초자연적 존재에 의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대체해버렸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완전한 합리성이란 불가능하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게 될 때라면 모를까? 그것은 이미 인간이 아니고 AI다. 따라서 인간의 인지적 한계와 현실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어떤 형태로든 비합리적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합리적 요소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이다. 순수한 합리성만으로는 정치적 동원과 결단이 어렵고, 순수한 비합리성만으로는 현실적 성공이 불가능하다.
맥베스의 비극은 예언을 맹신한 데 있지 않다. 그는 예언이라는 외피를 빌려 자신의 야망을 정당화했고, 그 과정에서 현실의 복잡성을 외면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기기만을 경계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정치적 결정이 항상 어떤 형태로든 믿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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