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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Talk

테세우스의 배

by 연학 2018. 10. 28.

테세우스의 배[각주:1]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50&v=dYAoiLhOuao

이 이야기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서 시작합니다. 플루타르크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괴수 미노타우르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한 테세우스의 배를, 아테네인들은 디미트리오스의 시대까지 보존합니다. 그들은 배의 판자가 썩으면 그 판자를 떼어버리고 더 튼튼한 판자를 그 자리에 박아 넣는 방식으로 오랜 기간 배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배에서 판자 조각을 몇 개 갈아 끼운다고 해도, 이 배가 테세우스가 타고왔던 '그 배'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한다 해서 이 점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원래의 배에 있었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까요?

토마스 홉스는 여기에 두 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위와 같이 테세우스의 배에서 판자를 하나씩 갈아끼우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배를 배1이라고 하고, 테세우스의 배에서 갈아끼운 낡은 판자들을 버리지 않고 그걸로 다시 원래와 똑같이 생긴 방법으로 배를 만들어 이를 배2라고 합시다. 이렇게 되면, 동일한 테세우스의 배에서 배1과 배2가 생긴 셈인데, 이 중에 진짜 테세우스의 배는 무엇인가요?

이와 관련한, 철학적 논의들은 제가 제목 각주에 참고로 넣은 위키 문서들이 잘 정리하였으니 이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고, 저는 제가 느낀 몇 가지만 정리하고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갖고 있는 키워드는 정체성, 본질, 동일성, 변화와 같은 것들입니다. 또는 그로 인해 정의되었던 우리의 삶의 방식들도 생각 거리가 되겠네요. 순수함, 원본, 진정성, 허구의 가치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모든 세대를 걸쳐서 삶의 화두로 삼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사색과 탐구의 활동만으로도 수천년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곳을 넘나드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모든 문학과 예술, 철학, 과학은 시대마다 인류가 직면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답을 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사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삶과, 죽음, 성장, 관계는 부와, 권력, 정치와 전쟁, 사회, 대자연과 의 수많은 변화라는 맥락에서 항상 인간의 정체성과 본질을 물어 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쥔 그 무언가의 존재이거나, 인간의 정신으로 도달할 수 없는 절대와 무한의 경지로서 정의되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에서의 상수나 무한수의 존재 같은 것이 아닐까 싶지요.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의 질문이 던져질 수 있겠습니다. 이건 감성의 영역이긴 한데,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맞닥뜨리게 되는, 바로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이건, 죽을 때가 되어서이건, 아니면 문득 가을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센티멘털함의 시기이건, 우리는 스스로를 옥황상제의 심판대에 올려놓곤 합니다. 답변은 우리의 삶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될 것입니다. 우리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 바라고 욕망했던 것들,그리고 그렇게 갖게 된 것들, 추구했던 삶의 사명이나 가치, 사회와 공동체에서의 내 역할, 그냥 단순한 육체의 실체, 뇌와 마음의 작용, 그 모든 것들이 나에 대한 답안에 채워질 것들입니다. 그 때 한 번 더 묻고자 합니다. '순수한 나는 무엇인가?' 어딘가에 놔두고 온 '그 시절의 때묻지 않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약간의 공허함과 함께 오는 이 질문에 또 적지 않은 이들이 가슴 떨려 합니다. (아니라고요? 이런 노래 몇 곡만 들어도 눈가가 촉촉해지실 분들이 왜 이러세요.) 다만, 많은 이들이 생각과 마음의 이 깊은 우물을 '그게 인간의 삶이야'라고 적당히 덮어주고 다시 살아갑니다.

여기에, 어린 시절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이제 하나씩 둘씩 현실이 되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생각과 삶의 근본으로 삼았던 이 원리들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복제인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가상의 현실 등은, 나로서, 인간으로서의 가장 근본이 되었던 원리, "지금 여기에서 의식이 있는 몸을 갖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 있는 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의 질문은 그런 것이었지요. 장자의 호접몽 고사도, 또 인간의 뇌에 대한 각종 실험의 결과들, 각종 인공의 장기를 통해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그러합니다.

20세기 대량 생산과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면서 컨텐츠의 복제는 도대체 '원본'이란 무엇이며, 또 그 가치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합니다. 수많은 복제품과, 이미지가 가득한 지금, 우리가 물리적인 원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시대에 그토록 인간이 갈구해온 창의와 창조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게다가 이제는 복제품이 원본을 도리에 뒤엎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도리어 복제품, 가상의 것들이 현실과 원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기까지 합니다[각주:2]. 이것은 현생 인류의 특징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근 몇년간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유발 하라리는 그의 인류3부작[각주:3]에서, 인류사에 있어, 호모 사피엔스 종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와 같이 언어를 통해 '허구'에 대한 '상호주관적 실재'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정보와 생명에 대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 되레 기존 인류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식해온 세계의 원본으로서의 '인류'가 위협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는, 다시 개인 삶에 대한 현실적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그 실체를 정의하기 어려운 우리의 현존재를 다룸에 있어, 무엇을 진짜라고 믿고 살아야 할까요? 또, 어느 경우에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제 생각에는, 굳이 개인의 삶에 있어서라면, 이쯤에 이르러서는 굳이 뭔가를 '원본'이라고 찍는 것은 재미있는 지적 탐구나 유희가 될 수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에서는 너무 한 쪽의 의미에 너무 경직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면, 시간 축을 따라 살아온 내 삶의 궤적은 각기 그 위치에서 중요한 의미의 방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 듯 싶습니다. 자기로서 의식하고 있는 그 대상이 바로 실체인 것이니, 그것은 하나이건 여럿이건 자기의 방향 혹은 사명에 따르는 한 진짜가 아닐까 합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개개인이 살면서 부여받은 (또는 부여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명에 따르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이 종교가 되었건, 인본주의가 되었건, 개개인의 욕망이 되었건 말이지요.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인류 자체가 개발해낸 '상호주관적, 혹은 주관적 실재'라는 '허구' 이상일 수 없기에, 궁극에선 삶의 의미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이쯤에 오면, 불가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떠올리게 하지요. 하라리 교수는 명상을 통한 자기의 관찰을 개인의 행동 양식으로 제안합니다. 인간으로서 지금의 자신에 대해 명징한 의식[각주:4]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제가 즐겨찾는 법륜 스님도 이를 제안합니다. '마음의 변화를 바라보라.' 슬픔, 불안, 분노, 평화로움을 그 자체로 바라보려 노력하면, 혼돈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도가도비상도道라고, 너무 하나의 실체를 규정하는 데 집착하다가, 흘러가는 물과 같이 시간을 흘려버리고 나면, 정의된 실체는 이미 과거의 실체에 불과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물을 바라보듯이, 내 마음과 정신을 또 바라보고 바라보는 것,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것(il faut tenter de vivre[각주:5])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으로 돌아오게 되네요.

  1. 기본적으로 다음의 위키 문서들을 참고할 것. 1.https://namu.wiki/w/%ED%85%8C%EC%84%B8%EC%9A%B0%EC%8A%A4%EC%9D%98%20%EB%B0%B0 2.https://en.wikipedia.org/wiki/Ship_of_Theseus 3.https://fr.wikipedia.org/wiki/Bateau_de_Th%C3%A9s%C3%A9e 4.https://ja.wikipedia.org/wiki/%E3%83%86%E3%82%BB%E3%82%A6%E3%82%B9%E3%81%AE%E8%88%B9 [본문으로]
  2.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아래의 위키 문서를 우선 참조함. 1.https://namu.wiki/w/%EC%9E%A5%20%EB%B3%B4%EB%93%9C%EB%A6%AC%EC%95%BC%EB%A5%B4 2.https://ko.wikipedia.org/wiki/%EC%9E%A5_%EB%B3%B4%EB%93%9C%EB%A6%AC%EC%95%BC%EB%A5%B4 [본문으로]
  3.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세기 제언 3권. [본문으로]
  4. Victor Hugo의 Les Comtemplation 시집을 읽을 때 많이 들었던 용어입니다. 결국 모든 사유의 끝은 지금 살아 있고 의식하고 있는 자아를 끊임없이 바라보라는 것인 듯 합니다. [본문으로]
  5. 폴 발레리의 시 - '해변의 묘지 Le Cimetiere Marin')의 구절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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