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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Talk

지음(知音)

by 연학 2018. 11. 3.

지음(知音)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거문고 연주자인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입니다. 종자기는 백아가 연주하는 곡을 듣고, 그가 어떤 생각으로 연주하는 지 알아맞혔다고 하지요. 이에 백아는 자기의 소리를 알아주는(知音) 이가 종자기 밖에 없다 하였고, 종자기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자신의 연주를 알아주는 이 없다며 거문고의 현을 끊어 버립니다(백아절현伯牙絶絃).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아는 그 사이가 참으로 부러울 뿐이죠. 열 마디 하지 않고 한 줄의 글귀로서 모든 것이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는 사이를 만날 수 있다면, 마음이 크게 떨릴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감동적으로 보았던 영화가 '영웅-천하의 시작(2002년)'입니다. 호화캐스팅, 아름다운 색채와 영상미, 그리고 무인들간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결투의 장면들은 '무예의 높은 경지'에 대한 환상마저 들게 하지요. 스토리는 진시황을 노리던 자객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위협이 되던 협객들을 물리친 무명의 이야기를 진시황이 듣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던 진시황은 무명의 이야기가 거짓이며 자신을 죽이려는 또 다른 자객임을 알아차리나, 그가 선뜻 나서지 못하자 이유를 묻습니다. 이에 무명은 궁궐로 오기 전 잔검(파검)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잔검은 천하(天下)라는 두 글자를 적어 주며,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린 전쟁을 종식시키고 천하 통일의 대의가 달성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진시황을 죽여선 안된다"고 합니다.[각주:1]


(영화 "영웅", 진시황이 잔검의 '천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진시황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하고 있는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였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합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천하를 위한 결단을 내려 자신을 죽일 지 말 지 결정하라며 무명에게 자신의 검을 던져 줍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서 말이죠.


무명의 결단 역시 같았습니다. 무명은 진시황을 죽일 있는 자리에서 돌아섭니다. 진시황은 그를 살려보내고 싶어하지만, 신하들은 왕을 암살하려 자는 죽여야 하는 것이 법이고, 법이 지켜져야 나라의 기강이 산다며 진시황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진시황은 비통함 속에 무명을 향한 화살을 발사할 것을 명하며,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뛰었던 이유는, 평생에 자신의 뜻을 이해할 있는 이를, 때문에 죽이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어쩌면 순간은 자신의 영혼을 파는 순간과 같았을 모릅니다. 무명이 마지막 선택을 하기 직전, 진시황은 잔검이 글씨 ''자를 두고, 검술의 최고 경지를 읽어 냅니다. 쓰여진 글자만으로도 깊을 뜻을 서로 전할 있는 사이, 바로 지음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지만, 마음은 되레 비언어적인 것들이 나타내어 주곤 합니다. 맥락에 함축된 의미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면, 사실 말은 되레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럽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 "" 마디로 끝나는 부모 자식간 대화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을 있습니다. 옛날 어느 이야기에는 죽마고우인 친구가 서로 간에 물음표 하나만을 써서 편지를 보내고, 그에 답장으로 마침표 하나를 보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만, 아무 이야기 없이 시간 마셔도 편안한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뜻을 공유할 있는 상대가 있다면, 되레 관계의 깊이가 되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게 마련입니다. 세대마다 만들어지는 10 또래 집단의 은어는 어른들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세대의 유대감을 만들어 냅니다. 언론에서는 년에 번씩 젊은이들의 언어 문화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싣지만, 사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도, 항상 시대의 은어 문화는 우려의 대상이었습니다. 최근에 화두가 급식체 역시도, 10년쯤 전엔 외계어로, 다시 10 전에는 통신체 어투로 매번 비판 받았습니다. 모바일에 의한 대화가 익숙해 지면서 초성의 대화도 늘어나는데, 결국 그것은 맥락을 공유하는 이들의 대화, , 그들만의 지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인 것이겠지요.

 

밀교나 비교(esoterism) 전통 역시 그런 점이 있고, 예수가 성경에서 말하듯 " 있는 자들은 알아 들어라" 말도 그렇습니다. 어느 특정 레벨이 되지 못한 이들이 어설프게 이해하고 끼어드는 것은 도리어 깊이 있는 대화의 진전을 방해하기만 뿐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요. 시쳇말로 "갑분싸, 낄끼빠빠.[각주:2]" 같은 것일 듯합니다. 학문의 영역 혹은 전문가 집단의 언어 사용 역시 오랜 기간에 걸친 경험과 학습을 쌓아야만 서로 논의의 상대로 받아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싶고요. 그러다 보면 준비가 안된 이들이 "보그병신체, 인문병신체" 남발하여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주 어려운 레벨이 아니라면, '눈치 빠른' 이들은 되레 남들의 마음에 파고들기 쉽기도 합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부하가 있다면 보통의 상사의 관심을 있겠지요. 부하의 마음을 읽는 상사도 효과적으로 조직을 관리해 나갈 있겠지요. 마음을 읽어 보고를 준비하고,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일할 있게 주는 것도 능력은 능력입니다. 다만, 공적 영역에서의 이런 심기 관리는 대부분 '간신' 주특기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인은 마음을 잠시 뒤로 두고 해야 일과 해야 말에 집중하고, 조직이나 리더는 그런 표현이 자유롭게 발현되도록 문화와 프로세스를 갖추어야 것입니다. '영웅'에서 진시황도 결국 신하들이 소리 높여 자신의 지음을 처단하라 따르지 않았던가요.

 

요컨대, 참으로 세상 살면서 마음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사는 것은 외롭고, 쓸쓸합니다.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가을 바람에 괴로이 (시를)읊조려 보지만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는 적네

창밖에는 삼경이 다 되도록 비가 내리는데

등불 앞의 내 마음은 만리 밖에 가 있네 -최치원(崔致遠)




  1. 물론 이 부분에는 영화의 주제를 둘러싼 큰 논란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2.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2017~8년경의 10대 은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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