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a Time Talk

40년째 초보 바둑 일기

by 연학 2018. 11. 19.

40년째 초보 바둑 일기

시간 날 때면, 게임 앱으로 종종 두고 있는 아홉줄 바둑입니다. 백으로 두어 이겼습니다.

아마 1단이시라는 아버지에게 초등학교 1학년쯤인가에 바둑을 배웠고, 어린 시절 이래저래 집중력도 좋아진다하여 입문서도 여러 차례 사다 보았지만, 원체 40년이 되도록 바둑은 왕초보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조치훈,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등의 이름을 TV에서 많이 보았고, 또 매주말이면 아버지가 틀어놓으셨던 TV의 바둑왕전 프로그램 때문에라도 바둑에 얽힌 이런 저런 용어들은 참 익숙한 편입니다. 여러 책을 통해서도 바둑의 비유나, 격언들은 인생에도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서, 나이가 들 수록 바둑이라는 게임은 한 번쯤 제대로 배워서 두고 싶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되레 저는 아직 미생을 보지 않았지만, 그 열풍도 그렇고, 충격적이었던 알파고와 이세돌9단의 대결과 그 해설설을 통해서 많은 매력이 대중에게도 어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저도 요 몇 년간은 바둑 관련 앱을 통해서 여러가지 사활이나 행마 같은 것들도 공부하면서 이해를 높여 보려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이 40년째 손대기 어려웠던 이유, 그리고 여전히 묘한 매력을 지닌 이유를 들라면, 항상 그 다음의 착수가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지'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집에 대한 개념이라든가, 단수, 패와 같은 기본적인 개념들은 이해하겠는데, 몇 수 밖을 읽어서 '당연히 그렇게 간다'는 식으로 해설하는 해설자들의 설명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죠. 

만화 '미생'에 실린 응씨배 결승 기보 해설 - 박치문, '대국'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허나 그렇게 몇 수 앞을 내다보아야만 하기에, 하나의 움직임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바둑이 가진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담'이라고 하듯, 사람과 사람이 짧게는 몇 수, 길게는 몇 십수에 이르기까지, 말로 하지 않고서도, 바둑돌로 그 마음과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나눌 수 있다니 이 얼마내 아름다운가요. 자기의 기풍이라는 것을 따라가면서도, 또 적절한 전략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은 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매력은, 결국, 제가 좀 약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바둑은 혼자서 두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맞붙어야 한다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승리도, 패배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게임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요. 연구실이나 시뮬레이션으로는 사람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게 아니고, 결국 현장에서의 실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고 할까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대와 만나, 자기의 방법이 맞는 지를 펼쳐보고, 이를 함께 복기하면서 실수를 찾아 고치고 자기를 더 낫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또한 인생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인 듯 합니다. 요 몇 년간 읽은 책 중에서, 조훈현 9단이 쓴 '고수의 생각법'은 '국수'의 칭호를 받은 조 9단이 승부와 삶에 임하는 자세가 잘 담겨 있어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추천할 만 합니다.

사실 승부에 대해서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2016년 3월 있었던 이 세기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1승 4패로 전체 전적에서는 패하고 말았습니다만, 그 이후로 인공지능의 실력이 무섭게 앞서가게 됨에 따라, 인공 지능에 승리한 마지막 인간으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바둑을 잘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한 수 한 수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몇 회에 걸친 중계 방송을 보면서 크게 느꼈던 것이 있었습니다. 대국 초반이었던 1국, 2국에서 알파고가 이해할 수 없는 착점을 하자, 많은 해설자들이 "기계의 한계를 드러내며 실수했다"며 이세돌의 승리를 예측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종국에 가서는 대국의 끝까지를 계산해 냈던 알파고의 '승부수'였었던 것이죠. 결국 사람이 수읽기를 하는 부분보다 인공 지능이 계산을 통해 읽어낸 수가 더 컸던 것이고, 이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불러 일으키고 말았죠. 그리고, 사람들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그 어떤 것도 무시할 수 없고, 결국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무모한 시도도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판을 뒤엎는 신의 한 수는 사람의 눈으로는 읽어낼 수 없는 것이지만,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고나 할까요.

제 2국에서, 많은 해설자들이 실수라고 지적했던 "5선 어깨짚기 (흑 37)" - 바둑계에서 금기시되던 이 행마가 이 대국 이후 한 때 유행되었다.

언제쯤 되면 한자리수 급수 쯤 되어 바둑이라는 걸 좀 제대로 알고 감상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좀 더 재미있는 색으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네요. 다만, 한 판, 두 판 두면서, 스스로 그날 그날 당면하고 있는 과제와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 데에 바둑은 분명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딸이 조금 더 자라서, 이런 류의 게임을 좋아해 준다면, 또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 때때로 바둑으로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진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 봅니다. (동시에, 저희 아버지에게 평생 그다지 만족스러운 상대가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Tea Time Tal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또 한 해의 근황  (0) 2019.12.04
세상의 모든 소리  (0) 2018.12.23
지음(知音)  (0) 2018.11.03
신을 두려워 할 줄 안다는 것 (2011)  (0) 2018.10.31
테세우스의 배  (0) 2018.10.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