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소리
자연은 살아 있는 기둥들이
때때로 모호한 말들을 새어 보내는 사원
사람들은 친근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 곳으로 들어간다어둠처럼 빛처럼 드넓으며
컴컴하고도 심원한 통일 속에서
긴 메아리 멀리서 섞이어 들듯
향과 색과 소리가 서로 화답하네La Nature est un temple où de vivants piliers
Laissent parfois sortir de confuses paroles ;
L’homme y passe à travers des forêts de symboles
Qui l’observent avec des regards familiers.
Comme de longs échos qui de loin se confondent,
Dans une ténébreuse et profonde unité,
Vaste comme la nuit et comme la clarté,
Les parfums, les couleurs et les sons se répondent.- 보들레르, "상응" 中 ( Charles Baudelaire, "Correspondence")
대학 시절 문학 시간에, 프랑스 상징주의를 배울 때 알게된 시로 꽤 좋아하는 시입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시인은, 마치 그리스 신전에 온 듯한 느낌으로 길을 걸어갑니다. 신관을 통해 내리는 신탁과 같이, 수많은 숲속의 나무며, 풀이며 새와 벌레, 바위와 흙을 비롯한 모든 숲속 보통의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메시지를 뿜어 냅니다. 오직 시인의 마음에 이 수많은 소리가 동시 다발적으로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이 자못 '시끄럽고 알아들을 수 없고, 빛과 어둠처럼 종종 상극이되는' 소리가 화음이 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더 나아가, 그 소리는 향과 빛깔과 같은 다른 감각과도 조화를 이루며 더 큰 감흥을 안겨줍니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거나, 혹은 들리더라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수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귀에 들리기 시작할 때의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요? 처음에는 신기함도 크겠지만, 무언가 길을 잃는 듯한 느낌에 놀라고 두려워지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의 세계를 갑자기 이해하게 될 때의 그 벅참은 또 어떠할까요?
대자연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이런 느낌에 가득찰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옛날 영화가 되어 버린 Love Actually(2003)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이르러 여러 관계 속에 얽힌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보여 줍니다. 동화 속 신데렐라 같은 사랑 이야기에서, 로맨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랑의 여러 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풀어내 주는데, 그 마지막은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실제로 많은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을 모자이크로 표현해 주며, 우리가 매일 겪는 모든 현실 속 사랑의 이야기를 예찬하며 끝맺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다고, 그 어느 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고, 또 그 모든 이야기들 하나하나를 파헤쳐 보면 그것은 마음을 울리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누구의 것을 진정한 사랑이니, 그렇지 않느니 하며 자기의 틀로 재단하는 것은 참 잘못된 일입니다. 해피 엔딩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도 정말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해피 엔딩이 아닌 경우도 많고요. (스케치북 고백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사랑은 '그 어딘가'에 있을 뿐입니다.
피테르 브뤼헬(Pieter Bruegel the Elder)의 그림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입니다. 그의 주요 대표작들은 동일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소한 면면을 다룹니다. 난삽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 싶기도 하면서, 동시에 큰 테마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그 다양한 모습 자체가 바로 '인간'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지금 이곳'을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그림은 재미있고 대단합니다.
Netherlandish Proverbs, 1559, oil on oak wood, (from Google)
공동 묘지는 이런 면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장소입니다.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묘비와 그 아래 누운 이들의 삶, 그들 자손의 삶을 생각해 보면, 또 그들의 조상의 삶을 생각해 보면 또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마음과 머릿 속을 가득 채웁니다. 그 얼마나 많은 드라마가 있었을까요, 그 얼마나 많은 기쁨과 슬픔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져 있을까요.
이 앞에서,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또 반대로 한 사람의 묘비 앞에 적힌 그 몇 문장에 어찌 가벼운 마음으로 설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다면 인생을 도통한 달인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너무 가볍게 삶을 바라보시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모든 소리에 '공명'을 일으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이는 참으로 매력적이며 동시에 가혹한 삶의 조건이 아닌가 합니다. 그 조그마한 이야기에 마음의 아픔, 슬픔, 기쁨을 모두 겪어야 할테니까요. 항상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어떤 시인은 이를 '천형(天刑)'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잘 아는 싯귀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윤동주, "서시 (序詩)"
좀 현실적인 이야기로 옮겨 오자면, 빅데이터의 분석은 그동안 우리가 들어오지 못했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다수에 묻혀, 또는 표현의 제약에 묻혀 항상 후순위로 밀려 왔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전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습니다. 기업의 설문 조사 혹은 표준적인 소비자 행태 분석, 구매 패턴 분석에서 보이지 않던 고객의 '속마음'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사회의 트렌드에 있어서도 "소수의 혹은 개인 내면의 숨겨진 마음"들이 분석되고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에 따라 그간에 없던 서비스와 제품, 컨텐츠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작은 마음 모두에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시스템이 미래엔 가능해 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1
다만, 그 모든 목소리를 내 마음에, 내 한 사람에 품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나도 그 '전체'의 어딘가에 위치하는 사람일 뿐, 그 전체의 목소리를 나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든 화음의 한 가운데에서 삶을 경험하고픈 바램에 비해, 한 인간으로 갖는 한계가 아쉬울 뿐입니다.
- 그래서 저는 데이터 분석에 있어서 우리가 좀 더 겸손해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논리의 틀에 짜맞추어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는 분석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에 대해 어떻게 철저히 이해할 지를 생각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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