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 (茶飯事)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처럼 당연하고 매우 일상적인 일들을 다반사 (茶飯事)라고 합니다. 선불교에서도 쓰이는 말이라 하는데, 깨달음이 별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반복되는 흔한 생활에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합니다.
하긴 요새의 SNS를 보노라면, 다반사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시시때때로 찻집, 음식점의 음식 사진이 올라오고, 얼마나 멋지게 먹고 다니느냐가 이야기 거리가 됩니다. 먹방에 이어 쿡방이 대세가 됩니다.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 스타가 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선 집에서 요리를 해 대접하는 모습들이 종종 방송됩니다. 하루는 채널을 네 번인가 다섯번을 돌렸는데, 그 모든 채널에서 프라이팬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먹고 사는 이야기야 말로 세상 가장 중요하고 재밌는 이야깁니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긴 먹는 데서 프랑스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느 프랑스인 친구는, "프랑스인에게 있어 먹는 것은 종교 의식(Ritual)"이라고 표현합니다. 저녁 식사 테이블은 마치 제단 같아서, 올라오는 요리에 대해서만도 한 시간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기업의 점심 시간이 두 시간에 가깝고, 오후 1시의 미팅을 잡으면 유독 지각이 많다고 불평하는 독일인 지인도 있었습니다. 십년쯤 전에는 프랑스인의 평균 점심 시간이 한 시간 이내로 줄기 시작했다며 '한탄하는(?)' 기사가 잡지에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진짜 종교에서도, 밥을 먹는 것은 매우 신성한 행사입니다. 식사 때의 기도는 물론이고, 식사에 붙여지는 이름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밥먹는 행위를 공양이라고 부릅니다. 스님들의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많은 보살과 부처를 생각하고, 자연과 뭇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발우'라는 그릇에 담아 밥을 먹기 때문에 '발우공양'이라고도 하는데, 스님들은 소심경이라는 불경을 암송하며 식사를 합니다. 자기 하나 밥먹는 것도 부처님께 바쳐지는 일로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선시 한 수 함께 하면 이렇습니다. 심플함에 모든 도가 담겨 있는 법입니다.
朝來共喫粥 粥了洗鉢盂 且問諸禪客 還曾會也無 (조래공끽죽 죽료세발우 차문제선객 환중회야무)
아침이면 함께 모여 죽을 마시고, 죽 먹고는 발우를 물에 씻는다.
가톨릭은, 이 '식사 한 끼'가 종교의 핵심 전례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미사'라고 불리는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로마군에 붙잡혀 처형 당하기 전날, 그 제자들과 나눈 '최후의 만찬'이 그 시작입니다. 그 만찬 전례는 또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기 전날 모든 히브리인들이 지켰던 '소박한 식사'에서 비롯합니다. 파스카 혹은 과월절이라고 불리는 유대인들의 축제는,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로망어에서 '부활 축일'을 뜻하는 단어의 어원이 됩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매주 혹은 매일 특정 장소에 모여 '예수의 몸과 피'로 상징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습니다. 한 끼 식사를 통해 나눔과 자기 희생의 신비를 체험하는 행사가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 미사란, 신이 "밥 한끼 먹고 가라"하고 불러주는 것일 듯도 싶습니다.
크리스트교에서 이 '식사 한 끼'는 나중에 예수의 부활에서도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처형 당했던 예수는 3일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납니다. 그 중의 한 에피소드는 제자들이 '엠마오'라는 곳으로 가는 길에 벌어집니다. 제자 둘이 길을 가며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낯선 사람이 나타납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었고, 제자들은 예수의 기적과 처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이야기가 이어져 제자들은 누군지 모르는 그 낯선 이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는데, 그가 빵을 떼어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눈이 뜨였고, 바로 예수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빵을 나누어 먹는 가장 소박한 행위가, 바로 신을 불러내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일상다반사'라고, 산다는 것은 결국 밥먹고 차 마시는 일들입니다. 먹고 일하고, 자고, 아침 식사, 아침 뉴스, 아침의 출근,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업무, 일, 공부,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돌아오고, 씻고, 자고, TV 보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과일 먹고, 빨래하고, 쇼핑합니다. 크게 달라질 것 없이, 생활은 그렇게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일로 가득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별로 다를 것이 없고, 또 그렇게 죽을 것까지 생각하면 참 허무합니다.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합니다. 소소한 변화는 그냥 약간의 진통제 역할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그 한 끼에서 영원을 생각하고 발견하는 사람과, 그 날 그 날의 먹거리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삶의 깊이와 질은 다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마무리 짓습니다.
- 원감 충지 (1226-1292), '우연히 써서 여러 스님에게 묻다', "정민 편역, "우리 선시 삼백수", 문학과 지성사, 20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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