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인생에 몇몇 기억에 남는 영화들의 하나로, 종종 이 영화를 고르곤 합니다. ラヂオの時間(라디오의 시간)이라는 동명의 연극을 1997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제가 본 것은 대략 2000년 경이었던 것 같고, 지금이나 그 때나 언제 보아도 120%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한국 흥행은 11만 정도로, 지금에야 작은 숫자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던 당시의 숫자로는 꽤 짭짤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흥행에 대 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이었던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생방송 라디오 스튜디오라는 작은 공간에 인생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데 있습니다. 하나하나 파내서 이야기거리 삼고 싶은 주제가 매우 많고,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가 내는 목소리에 공감이 갑니다. 초짜 작가, 스폰서를 얻어야 하는 디렉터, 피디, 성우들, 아나운서, 작가의 남편 역할까지 모두가 매우 익숙하고, 나도 한 번쯤 겪어 봤음 직한 삶을 그려냅니다. 신참자와 원로, 기계와 사람, 돈과 권력, 예술가와 관리자, 전문가가 모두 어우러져 수많은 갈등을 자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송은 시작하게 되며, 어떻게든 "계속됩니다" 아니, "계속 되어야 합니다."
공간은 참 작은 공간, 라디오 스튜디오이지만, 이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 참으로 '광활하게' 펼쳐집니다. 초짜 라디오 작가의 단편 드라마가 방송 전파를 타는 날, 한 시골 도시를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의 내용은 각자의 얽힌 이해관계를 반영해 주느라 미국 시카고 배경의 법정 드라마가 되고, 급기야 주인공이 우주 미아로 버려지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작가의 애초 구상은 송두리째 망가져 버리지만, 결국 모두가 어떻게 어떻게 하나의 결말로 만들어 가는 그 과정이 아름답고, 그래서 마지막에 '우주에서 돌아온' 맥도날드의 등장이 눈물겹게 느껴집니다. "방송 말미에 나가는 그 '이름 석자'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라며, PD가 라디오 케이블을 뽑아든 작가를 설득할 때는 비장함마저 흐릅니다. 내부의 난리법석 상황을 알지도 못한채, 방송을 듣는 청취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저는 어떤 공연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보다, 리허설을 보는 걸 더 즐기는 편입니다. 작품을 만들고, 무대에 무엇을 올리는 과정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싸워가는 과정이 바로 그 작품 자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메이킹 필름이며, 요사이 인기 있는 리얼리티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갖는 매력이 그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이 영화는 잘 짜여진 메이킹 필름 같은 느낌을 줍니다.
모두의 의견을 조율하느라 디렉터는 지쳐 버리고, 결국에는 결정에 반기를 든 PD의 재기로 '맥도날드'가 살아 돌아오는 '희극'으로 끝나버리자, 디렉터는 PD에게 말합니다. "나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여기저기 머리를 조아리고 굽신거려가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그 순간, 방송국으로 트럭 한 대가 쳐들어 옵니다. 트럭 운전사는 차에서 내려 "PD"를 황급히 찾습니다. 방송을 듣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방송국까지 트럭을 몰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라디오 드라마의 PD를 찾으며 대성통곡합니다. 주인공이 잘 되어 너무 다행이라고 펑펑 우는 모습에 디렉터와 PD는 순간 멍해집니다. 그리고 나서, 그 청취자를 뒤에 두고 방송국을 나오며 디렉터는 PD에게 말을 겁니다. "그 속편 말이야. 하인리히가 타고 물에 빠진 차를 수륙양용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지긋지긋해서 한 번만 하고 말 것이라던 방송을, 한 번 더 하고 싶어진 것이지요. 결국 라디오 방송의 존재 이유라는 것은 그 방송을 듣는 청취자에게 있었으니 말이죠.
그러고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는 뭐 딱히 숭고하달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속 작가의 첫 대본처럼 세상사가 그리 아름답고, 완벽하게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단지 무언가 조화를 꿈꾸며, 어떻게든 '방송을 마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이 해볼 만하고, 재밌는 일이라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 지요.
특히나,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는 분이 있다면, 이 영화를 꼭 권하고 싶습니다. 안정 혹은 불안의 와중에,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냥 상황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200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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