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쫓기다가 갑자기 여유가 생길 때면, 보통 서점을 찾곤 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난 날은 시내의 큰 서점에 달려가 이 책 저 책을 열어보며 하루를 보내고 오곤 했는데, 거기서 비롯된 버릇인지 싶습니다. 무슨 책을 사지는 않는다고 해도, 서점에 있는 것만으로 많은 지적 자극이 됩니다. 예쁜 책들을 보면, 저도 그런 책을 한 권 만들고 싶어집니다. 수많은 책의 제목들은 제게 "넌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질문을 하는 듯도 합니다. 가만히 주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요새 사람들이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는 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이니, 인터넷 검색으로 요약된 자료를 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느끼고 돌아오곤 합니다.
당연히 충동 구매가 벌어집니다. 요새는 몇 권 집어들기만 해도 십만원이 금방 넘어버리는 책값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집에 사갖고 들어가지 않으면 뭔가 내 인생에 소중한 이야기를 못듣고 넘어가는 듯 하여, 이미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그렇게 사들고 오는 책을 다 읽었으면 좋겠지만, 한 절반 정도는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서가 한 켠을 차지하다가 한 5년-10년쯤 지나 중고 서점에 팔리곤 했습니다.
최근 두 달 정도 쫓기어 살다가, 오늘 오후 좀 일찍 사무실을 나선 터에, 다시 서점을 들렀습니다. 사실은 오전에 페이스북에서 접한 어떤 책을 사볼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실상 책을 들어보니 마음에는 들지 않더군요. 덕분에 옆에 눈길을 끄는 책들을 둘러보며 한 시간동안 지적 산책을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한 이십년 이렇게 해 보니, 충동 구매로 사서 들어오는 책들의 구성이 바로 시절에 따라 제가 고민하고 관심 갖던 문제들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어떤 때에는 경영학 관련 책만 잔뜩 사던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심리 책을 잔뜩, 어떤 때에는 인문이나 종교의 책을 사들고 오던 때도 있었구요. 그렇게 쌓여 있는 제 서재의 이야기는 따로 또 풀어놓을 기회가 있을 것 같고, 오늘 사들고 온 것들을 한 번 여기에 내려 놓아 볼까 합니다.
https://ordinarypeople.kr/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띈 책인데요. 하나의 사물에 대해 자세히 정리한 매거진입니다. 1호로 나온 책은 '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펜이나 종이를 좀 좋아해서, 그에 대해 자유롭게 정리된 책을 보고 싶은 마음에 묻지도 않고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하나의 사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책들은 스타일적으로도 괜찮고, 해당 건에 대해서 나름대로 360도의 이해를 가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사자마자, 건너편 펜 가게에서 제가 쓰는 펜의 잉크를 사와 버렸네요.
알렉산더 데만트라는 독일 고대사학자의 저술로, 시간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합니다. 존재, 죽음과 함께, 마음을 후벼파는 인생의 주제가 시간이라, 덜컥 집어 들었습니다.
중고등 학교 시절에 참고서 코너를 지나칠 수 없었다면, 경영 관련 서적들은 어른이들의 참고서 코너를 지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한 때는 이것저것 많이 읽어봤지만, 뭐 결국 먹고 사는 문제는 책쓰는 분들의 아이디어와는 좀 다르게 흘러가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뜸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 두 권은 그 와중에 좀 눈에 들어오네요. 지난 몇 달 새에 유발 하라리로 한껏 자극된 뇌를 한 번 더 돌아가게 만들어 줄 만한 책들일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새 대세가 되는 서점가의 코너는 몇년 째 힐링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그대로라도 된다", "서두를 것 없다" 등등의 치유책들이 많은데, 이것도 이제는 좀 식상해 지는 것 같아요. 이 와중에, 오랫동안 다른 이들의 글에서 잠깐씩 소개 받았던 이해인 수녀님을 만나뵙기로 하였습니다. 한동안 스님들의 책(법정스님, 법륜스님 등)의 책에 좀 빠져 있었는데, 수녀님의 책으로 또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요새 건강이 안좋아지셨다는 말씀이 가끔 들리곤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곧 있으면 설연휴이기도 해서, 여유가 되는 시간에 조금씩 읽어보려고 합니다. 이 중에 정말 얼마나 다 읽을 수 있을 지도 약간의 도전이 될 것 같긴 하구요. 다만, 2018년 1월에는 이런 책들이 결국 저의 손길에 닿았다는 점을 남겨 놓고 싶어 몇 자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 이영돈 PD 패러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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