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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Talk

Reset : Hit Refresh

by 연학 2018. 4. 6.

Reset: Hit Refresh[각주:1]




리셋버튼에 대한 욕구는 언제 어느 때나 있어 왔습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는 "포맷해 버리고 싶다"는 표현으로 쓰기도 했지요. PC를 쓰면서 점차 레지스트리에 무엇이 가득차서 느려지고, 복잡해지고, 그 때문에 OS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 깨끗한 환경에서 쓰기를 바라왔던 것 같습니다. 요새는 그나마 PC를 쓰는 일이 단순해지다보니, 이것저것 많이 깔아 쓰던 시절처럼 시간이 갈 수록 PC가 느려지는 느낌은 좀 적어진 듯 합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무언가에 계속 발목을 잡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 그 전과 다른 어떤 방향을 향해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조직이나 기업에 있어서는 4차 산업 혁명이니 어쩌니 하는 거창한 용어들에 기대지 않으려 합니다. 분명히 예전과는 다른 질서가 소개되었고, 기존의 방식에는 균열이 생겼습니다. 시장은 한계가 보이고, 조직 구성원들은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 속에서 누군가가 "새 하늘과 새 땅"[각주:2]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산업이나 조직 못지 않게 개인적으로도 변화의 필요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나름 '조용하고 밋밋하게 직장 생활이나 해야 했을' 운명인 듯 합니다. 그런데, 그리 길었다 할 수 없는 2-30대의 커리어 속에서 산업과 비즈니스의 구조 변화로 인한 큰 성공과 실패를 한 두 차례 경험한 후로, 항상 "새로운 길을 찾는 것"에 매력을 느끼며 살아온 듯 합니다. 제 그릇과 역량에 맞는 것인 지는 모르겠으나, 변화와 혁신은 항상 저를 밀어붙이는 테마였습니다.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그 모든 환경과 당사자에게 최적화된 신의 한 수를 찾고자 하는 일은 가장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갑작스럽게 마음의 나이가 들어버리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곤 합니다. 새롭게 맞게 된 역할  탓 인지, 내가 그 사이에 나이가 들고 있었음을 애써 외면해 왔던 탓인 지요. 어느덧 늘어난 뱃살과 몸무게와 함께 무언가 제가 찾았어야 할 가치를 어디에선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래저래 갑갑함에 읽어본 책에서는, 그냥 중년 언저리의 자아 과제의 변화, 즉 이제는 그간 외부로부터 투사된 자신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직면해야 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각주:3]하기도 합니다.


결국은 진짜 추구해야 할 것, 그리고 다시 한 번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하는 것. 그래서 스스로의 열정을 다시 발견해 나가고, 이를 따르는 것. 새로운 여정은 기존의 여정과 다를 것은 없지만, 더 많은 각오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늦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요. 그러나 밋밋한 결정만으로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만 했던 저로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를 만들어 보고 싶은 그 바램과 이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더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1. Microsoft CEO 사티아 나델라의 책 제목. [본문으로]
  2. et vidi caelum novum et terram novam (요한묵시록 21:1) [본문으로]
  3. James Hollis, The Middle Passage, 1993. (한국어 번역판 제목,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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