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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Talk

네 편의 초상화

by 연학 2018. 3. 11.

네 편의 초상화 (2018. 3.)



한 번쯤은 함께 이야기 하고 싶었던 그림들이긴 합니다. 다만, 매번 그림을 보고, 그 그림에 대해서 뭔가 설명하고자 할 때엔, 마음에 느끼는 것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원래 초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한 서른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초상화나 사람을 다룬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법이나 이런 것들은 제가 워낙 문외한이니 제껴두고, 그림에 담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제 삶에 대해서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를 던져줍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자 노력하다보면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성찰하게 되는 이치인 듯 합니다. 그들의 초상화 속 배경과 소품과, 표정으로 나타나는, 한 장에 압축되어 버린 '삶'의 깊이를 느껴보려 합니다.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무엇으로 기억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Hans Holbein, Portrait of the Merchant Georg Gisze, 1532, Oil on wood,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각주:1]


한스 홀바인 작, 런던에 와 있던 상공인인 게오르그 기제의 초상에 드러나는 모습들이 그런 식입니다. 다른 귀족들, 왕의 초상화도 그렇겠지만, 삶의 Key가 되는 소품이나 배경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워낙 비용이 드는 일이니 여기에 '과시욕'도 함께 했겠습니다. 하지만, 평생에 변치 않는 사랑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고, 나름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자부심도 함께 했겠지요. 그와 동시에 삶의 허무함도 표현된 듯 합니다.


Christian Schad, Portrait of the Count of St-Genois d'Anneaucourt, 1927 Oil painting, Centre Pompidou, Paris, France[각주:2]


퐁피두 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은 2005년에 처음 접한 이래로, 제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 잡고 있습니다. 부르주아와, 우울에 가까운 무표정함, 음울한 시대상과 배경의 매춘부들. 이런 것들이 묘하게 이 시대상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Pablo Picasso, The old guitarist, 1903-04, Oil on Panel,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USA


가난한 그리고 핏기없는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동정과 연민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오랜 수도승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고전화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기타 한 대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우리네 삶이 또한 그렇게 처량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샤갈의 바이올리니스트 그림과 연결되서 종종 대조를 일으켜, 더 가슴을 울립니다. 


Leonardo Da Vinci, Saint John the Baptist, 1513-16(?), Oil on Walnut Wood, Louvre, Paris, France 


루브르에 걸려 있으면서, 모나리자만큼의 신비한 미소를 지닌 이 그림은 세례 요한에 대한 그림입니다. 저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과 함께, 묘한 표정이 보는 이의 많은 상상을 불러 일으킵니다. 가장 우선은 하느님, 혹은 예수님이 저기에 있으니, 나를 보지 말고 저 분을 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분이 모르는 그 '진리'를 나는 알고 있지"하는 듯한 자부심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그림을 볼 때면, 저도 "나도 뭔가 알고 있지"하며 장난스럽게 대꾸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내면의 깊이 있는 개그를 쭉 끌어올리고 싶은 느낌입니다.


이상이 제가 가장 마음에 두는 네 편의 초상화였습니다. 저의 초상화는, 여러분의 초상화는 어떻게 그려질까요?




  1.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신교 지역의 화가들은 기존의 큰 수입원이었던 제단화 작업 의뢰를 잃게 된다. 그리하여 화가들의 수입원은 책의 삽화나 초상화 정도로만 국한된다. 이 시기의 화가였던 한스 홀바인은 초상화 분야를 자신의 독보적인 영역으로 개척한다. 그의 초기 초상화에서는 인물의 배경, "평소에 그 인물이 가까이 했던 것들을 통해서 주인공의 특성을 표현하며, 세부적인 묘사에서 솜씨를 과시하는 편이었으나, 점차 완숙해감에 따라 점차 인물의 표현에 집중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 E.H Gombrich, 서양미술사 [본문으로]
  2. 신즉물주의(New Objectivity), 다다이즘 화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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