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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Talk

왜 사는가?

by 연학 2018. 9. 16.


왜 사는가?


왜 사는가?

  •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한 번 해 보려고 합니다. 누구나 다 하는 질문인데, 그 답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애당초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하지만, 도대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길을 잃기만 할 뿐입니다. 이 갑갑한 마음에, 지금까지의 탐색을 토대로, 나름의 생각 지도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두어 볼까 합니다.
  • 우선, 우리가 보통 묻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숨겨진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왜 사는가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논리와, 어휘로 궁극의 경지를 다룬다 해도, 결국 우리의 삶에 대한 관심은 지금 여기에 내가 있기에" 생겨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느님, 제우스, 과학법칙, 철학 등등이 동원되고 발달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종종 이런 질문이 던져지는 이유는, 대체로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왜 살아야 하는가를 자문하기 때문입니다. 
  • 이에 대해, 상식적으로는 사는 것이 좋고 죽는 것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현실의 삶이란 대체로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기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는 “사는 것은 나쁘거나, 혹은, 좋고 나쁨을 논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는 것은 좋은 것인가?

  • 우선, 죽음은 그 실체가 무엇이건, 현존재가 연속성을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을 주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생물은 죽음 또는 종족의 소멸 위기 앞에서 그 자신을 지속시키고자 하는 본능을 갖고 있으며, 이성은 이를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기준에 따라 삶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단지, 현생의 사람에게 죽음은 피하고 싶은 것’, 즉 나쁜 것이며, 삶은 당연한 것으로, ‘적어도 나쁘지는 않은 것이라고 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가장 원초적으로 삶이 좋은 것이어야 한다면 저는 이 이유를 대고 싶습니다.
  • 한 발 나아가, 내 삶이 좋은 것이라면, 그것은 나 혹은 내가 관련된 그 무엇인가에 혜택이나 득(benefit)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좋은 것이라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 혜택의 대상은 나 자신이나, 우리 사회, 인간 종족, 혹은 신과 대자연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개인은 삶을 통해서, 일상의 크고 작은 즐거움에서 비롯하여, 더 크게는 무에서 유가 되어 사는 것자체에 이르기까지, 살지 않았으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 어떤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해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삶의 작은 요소는 매우 많을 것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내가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것이며" 그 가치를 수치로 표현하면 분명히 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일부의 사람은 때때로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마저도(이는 분명 음(-)의 가치를 갖는 요소이겠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자주 인용되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구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시인의 고통스러웠던 삶에 대비되어 독자에게 큰 내면의 울림을 전합니다.
  • 나의 삶은 내가 구성하는 공동체를 비롯한, ‘더 큰 질서의 생존 번영에도 기여합니다. 큰 질서는 내게 여러 경로를 통해 내가 살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당장 나와 관계를 맺고 사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는 중요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나는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이유가 될 수 있으며, 사람은 그렇게 서로서로 기대며 함께 살아가며 유대감을 기르고, ‘더 큰 나 자신이 되어갑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조직이, 나라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과 인류가 내 도움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런 이들에게 내 삶은 분명히 도움을 줄 것입니다.
  • 더 크게 보면, 우리는 지구를 구성해온 거대한 생명 체계의 일부입니다. 최초의 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난 이후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확장된, ‘생명체 연합의 일부입니다. 내 삶은 이 큰 생명에 기여하는 하나의 세포와 같습니다. 여기에 사람의 이성이, 더 큰 절대성에 기여합니다. 사람은 온 삶을 바쳐 우주와, 허무를 다루며, 신의 질서를 완성시키고자 합니다. 신은 그 실체를 따지기에 앞서, 인간 합리성이 상정하고 따르는 최고의 질서”가 됩니다.
  • 그러나, 삶의 동일한 상황을 의미 없는 허무함으로 인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허울 좋은 명분에 기만 당하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안수정등의 법문은 여기에 무상의 실존 상황까지도 이야기 합니다. 삶을 부조리로 인식한 까뮈와 실존주의자들도 크게는 이 태도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 여기에, 나와 주변을 연결하는 고리는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점차 약해지고 끊어지기도 합니다. 전체의 일부 역할을 내가 왜 해야 하는 지도 의문이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나는 종종 대체 가능한 존재이며,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도 경험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이 상황을 더 자주 쉽게 직면하곤 합니다. 게다가 내가 지금 여기 왜 살아야 하는가고민하는 이에게 남들이며 우주가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다시 말해, 어차피 죽을 인생, 뭘 해도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붙이려 사람들은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죽을 것인가?

  • 삶이 안좋은 거라면또는 좋고 나쁨과 별개가 되는 거라면죽어도 되는 걸까요안좋은 거라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아니면 자기가 굳이 살기 싫다는 걸 다른 사람이 어찌 막을까요?
  • 종교는 이걸 조금 편하게 풀어줍니다. “이승이 워낙 그런 곳” (나쁘거나혹은 가치와 무관한 곳)이라며남에게 죄짓지 않으면 “운좋게 영원히 살 수도 있을테니, 걱정하지 말고 주변에 베풀며 살아라” 합니다삶이 어려운 건 알겠는데굳이 자살해서 옆 사람 힘들게 하는 것도 이리 보면 죄에 속하고, 살다보면 위에 이야기 한 것처럼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니, 시간과 대세에 따르면 될 걸 힘들게 죽을 건 없다는 정도면 현대적 풀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 게다가 죽으려고 하면 또 막상 쉽지는 않습니다. 표현이 좀 과격할 수 있겠으나, 자살 시도까지 갔던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정작 마지막 순간에는 몇 발짝 뒤로 물러서게 된다고도 합니다. 딱히 사는 게 좋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죽음 앞에서는 뭔가 안좋은 것이라는 직감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죽음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단 아프고 괴로운 건 피하는 것이 생명의 본능이니까요. 사실 아프고 괴로운 감각은 생명이 진화하면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입니다.
  • 그렇다면 고통이 없는 안락사는 괜찮은 건가요? 수면내시경 할 때와 같이, 편안하게 잠들게 해 준다 하면, 힘들게 살고 계신 당신은 서명하실 건가요? 할 수 있다면, 또 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보통 이 경우에 죽음이 꺼려지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든다고 합니다반대로 자살을 감행하게 되는 분들의 상당 수는 이러한 삶의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합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우리는 뭔가 머리로 생각하려’ 하지만사실 그 문제의 핵심에는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왜 사느냐라는 질문은 왜 한 건가요?

  • 드물게, 순수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살펴보게 된 경우도 있겠고요. 그런데, 서두에 이야기한 대로, 이 질문은 내가 지금 사는 것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에 이르면 그 질문의 의도를 돌이켜, 답을 찾아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 법륜 스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정해진 설법을 하시기 보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며, 그 자리에서 질문을 받아 바로 답을 해 주시는 자리(즉문즉설)를 갖곤 하시는데, 그 대답이 참 명쾌하여 자주 글을 읽고 동영상을 찾아보곤 했습니다이 분의 글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 공유하고 시작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이 질문 속에는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숨어 있어요.
나는 특별하다, 그래서 특별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괴롭다는 거지요.
내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부담을 갖는 겁니다...
...그러니 특별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가볍고 편안하게 살아보세요...[각주:1][각주:2]

  • 왜 사느냐의 질문은 결국 삶이 맘에 안들기 때문인 건데, 사는 게 마음이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특별하기까진 아니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내 뜻대로 하게 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럼 그대로 하면 되겠지만, 여건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뭐 여기서부터는 삶을 사느냐 안사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다 맞출 순 없고, 그 바램을 따라가다보면 끝이 없다는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 꼭 사는 게 꼭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면, 결국 마음과 실천의 문제로 와서, 여러가지 공부와 경험, 도전을 통해 마음에 들게 삶을 만들거나, 기대를 낮추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서도 즐겁게 되는 법을 배우면 될 듯합니다. 각각의 경우 모두에 있어 좋은 사람들과 좋은 책들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의 중간쯤 어딘가가 필요하다고 해도, 역시 이를 위한 적절한 도움을 어디선가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제나 받아들이고 있어야 할 사실은 "삶에 정답이 있음을 기대하지 말고, 내게 최적화된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고 그런 걸 못 찾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까진 없을테고요. 삶이 맘에 안드는 게 죽을 이유는 아니니까요
  • 사나 죽으나 별 차이 없는데, 현상 유지나 하는 건 어떨까요? 이제부터는 정말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술이나 한 잔 하며 즐겁게 놀러 나가건, 힘되는 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거나,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힘 닿는 대로 해 보거나 말이죠. 그럼에도, 의미 없는 현상 유지가 싫다면, 정말! 알아서 하세요.


  1. https://blog.naver.com/pomnyun/220928023958 [본문으로]
  2. 문학평론가 고미숙의 인터뷰로 비슷한 내용- https://www.facebook.com/grandmasterclass/videos/15250632308755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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