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셜록 홈즈의 춤추는 인형이라는 추리소설에서 시작된 암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삶의 여러 영역으로 뻗어나갔다. 그중에서도 시는 내게 가장 매혹적인 암호였다. 대학 시절, 상징주의 시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랭보의 색채를 가진 모음들, 보들레르의 '상응'들, 말라르메의 난해한 은유들... 이 모든 시적 장치들은 내게 완벽한 수수께끼였다. 시인들은 일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상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전달했고, 나는 그 암호를 해독하는 데 심취했다.
도상학을 통해 그림 속 이야기를 해독하는 일에도 매료되었다. 마치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천재 어린이를 위한 추리 퍼즐'에 빠져있던 그때처럼, 나는 끊임없이 해독할 것들을 찾아다녔다. 시각 예술과 시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과 색채로 말했다면, 베를렌은 그것을 음악적인 단어들로 재구성했다.
언어는 또 다른 차원의 암호였다.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라틴어, 에스페란토어까지. 심지어 어린 시절 배운 코딩까지도 하나의 언어였다. 단순히 언어 자체가 아닌, "왜 그렇게 말하게 되었나"라는 물음은 음운론과 화용론이라는 더 깊은 탐구로 이어졌다. 주역, 점성술, 천문, 역술과 같은 고대의 상징체계들도 같은 맥락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내게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나는 늘 Decoder였지, Encoder가 되지 못했다는 것.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를 해독하는 데는 능했으나, 나만의 의미 있는 상징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래서일까, 해독한 것들을 설명하다 보니 말만 많아지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치 시의 신비를 산문으로 설명하려 애쓰는 문학 비평가처럼.
흥미롭게도, 18살 차이 나는 사촌 동생은 이러한 '해독'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듯,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현대의 암호 해독가들인지도 모른다.
"모든 텍스트는 상호텍스트성을 가진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다른 삶들과 얽히며 새로운 암호를 만들어낸다. 발레리가 말했듯, "시는 언어 속의 춤"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춤사위를 해독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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