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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 Time Talk36

데생 수업 : 본질에 대하여 데생 수업 : 본질에 대하여 사물의 본질(essence)에 대한 질문은, 대학교 1학년 쯤 시작된 것 같습니다. 특정 현상이나 사물을 다른 것과 구분 짓는 그 '무엇'이 무엇인가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때늦은 사춘기적 감성으로 접근하자면, '어린 시절의 순수한 자아'가 어른이 되어가며 세파에 점차 때묻어 감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질문의 시작이었습니다. 도대체 순수한 나를 찾는다 하는데, 그 '순수한 나'는 무엇이었느냐 하는 질문이었죠. 한참 이런 류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쯤, 유럽에 배낭 여행을 떠났고, 무슨 만행을 떠난 스님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깨달음'을 찾아다녔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산을 봐도, 강을 봐도, 길을 걸어도, 밥을 먹으며 질문에 대한 답만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쯤에 퐁피두 미술관 .. 2017. 2. 6.
로마인 이야기에 그었던 밑줄들 로마인 이야기에 그었던 밑줄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15권에 걸친 대작입니다. 그 방대한 공부에도 불구하고 "로마사 연의"라는 비아냥마저 있을 만큼 오류도 많고, 편견에 사로잡힌 부분도 많아 정식의 역사서로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나 일본 보수의 시각에 충실하였다는 지적은 오히려 이 책에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다만, 그녀가 그렇게 숭배해 마지 않았던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를 생각할 때, 역사서로서의 가치보다 '역사 평론서'나 '에세이'로서의 가치는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책 덕분에 로마사나 역사 연구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니 분명 재미있게 쓰인 책 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옛 글들을 정리하면서, 예전에 로마인 이야기에 그어 두었.. 2017. 1. 1.
글쓰기에 대한 단상 글쓰기에 대한 단상 어린 시절 이백과 두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난 그래도 이백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 했었습니다. 좀 즉흥적인 면도 강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내뱉은 표현들이 엣지있게 느껴질 적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한 20년 정도 지나서 돌이켜 보면, 말을 던지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을 쓰기는 꽤나 어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할 때는 청자와 나 사이에 함께 하는 지식이나 공감의 정도를 어느 정도 기본으로 알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에 비해, 실제 글을 쓸 때는 독자들간의 다양한 성향을 맞추어 '제대로 된 이야기'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제 글 실력이 나빴다는 겁니다. 떠오르는 단상은 하루에도 수십가지인데, 그것을 어떻게 잘 정리해야 할 지도 생각하지 못한 채 .. 2016. 12. 19.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外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外 인생영화 2편 예나 지금이나, 흘러가는 시간은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나이 듦이라는 것은 서글픈 듯 하면서도, 또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 법도 하고, 종종은 웃음 지을 일도 뒤섞여 있습니다. 특히 제게는 이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꽤나 감정 북받쳐 오르게 하는 무엇이었던 듯 싶습니다. 지금에야 담담해졌지만, 예전에는 특히 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의 인생 영화 목록에는 시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네요. 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지금까지의 제일은 이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지만, 실제로는 설정만 유사할 뿐이고, 내용은.. 2016. 11. 28.
오늘치 꿈을 이루기 오늘치 꿈을 이루기 예전 직장 선배와 저녁을 먹다가 나온 이야기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가급적 시간이나 금액의 제약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고, 유사하게 제가 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100억도 좋고, 1000억도 좋습니다. 큰 금액을 정해 놓고 시작합니다. 다만 이 돈을 은행에 두고 이자를 받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금액과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할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도 짜 봅니다. 100억은 이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50억은 이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언제까지 어떤 결.. 2016. 11. 26.
안수정등... 아 달다! 안수정등(岸樹井藤)... 아 달다! 해인사 안수정등도 이야기는 안수정등이라는 불가의 비유에서 시작합니다. 아래의 법문이 주된 내용입니다. 한 나그네가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그네는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언덕 밑에 우물을 발견하고, 그 아래로 늘어진 등나무 넝쿨을 따라 내려가 코끼리를 피했다. 그러나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있었으며, 우물 중턱에는 4마리의 뱀이 있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중간에 매달려 있는데, 두 팔은 점점 더 아파왔다. 이 때,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기 시작했으며, 들불까지 일어 위태로움을 더했다. 이래 저래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 2016. 10. 1.
신은 사람 가운데에 있다 신은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Deus inter homines habitat.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말이지만, 또 뭔가 설명하려면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래도 그냥 오늘 밤엔 이런 이야기로 차나 한 잔 하는 건 어떨까 싶어서 화두를 꺼내 봅니다. 평소에 남들과 굳이 신이며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할 일은 없다보니, 결국 한적한 주말 밤시간에 몇 자 남기는 글들이 이 쪽 주제들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15년 전에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즈음에는 관심도 관심인지라, 종종 꺼내어 읽던 요한복음의 한 구절이 눈에 와닿았습니다. 예수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저 분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가르쳐 주자, 두 제자가 예수를 따라갑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선생님.. 2016. 10. 1.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인생에 몇몇 기억에 남는 영화들의 하나로, 종종 이 영화를 고르곤 합니다. ラヂオの時間(라디오의 시간)이라는 동명의 연극을 1997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제가 본 것은 대략 2000년 경이었던 것 같고, 지금이나 그 때나 언제 보아도 120% 공감을 이끌어 냅니다. 한국 흥행은 11만 정도로, 지금에야 작은 숫자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던 당시의 숫자로는 꽤 짭짤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흥행에 대 성공을 거두었던 작품이었던 듯 합니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생방송 라디오 스튜디오라는 작은 공간에 인생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데 있습니다. 하나하나 파내서 이야기거리 삼고 싶은 주제가 매우 많고, 모든 캐릭터 하나하나가 내는 목소리에 공감이 갑니다. 초짜 작가,.. 2016. 9. 18.
다반사 (茶飯事) 다반사 (茶飯事)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처럼 당연하고 매우 일상적인 일들을 다반사 (茶飯事)라고 합니다. 선불교에서도 쓰이는 말이라 하는데, 깨달음이 별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반복되는 흔한 생활에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합니다. 하긴 요새의 SNS를 보노라면, 다반사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시시때때로 찻집, 음식점의 음식 사진이 올라오고, 얼마나 멋지게 먹고 다니느냐가 이야기 거리가 됩니다. 먹방에 이어 쿡방이 대세가 됩니다.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 스타가 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선 집에서 요리를 해 대접하는 모습들이 종종 방송됩니다. 하루는 채널을 네 번인가 다섯번을 돌렸는데, 그 모든 채널에서 프라이팬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쯤 .. 2016. 9. 10.
호칭기도 호칭기도 가톨릭 교회에는, 성인호칭 기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 호칭기도(Litaniae)라는 것은 선창자가 청원하는 기도를 선창하면, 신자들은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십시오"하는 식의 응송을 하는 기도문입니다. 동방교회 시절, 성상 숭배 반대 분위기 속에서, 성인을 공경하기 위한 기도들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미사에도 반영되어, 자비송(Kyrie)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 형식이 신자들에게 전해져, 개인 기도를 바칠 때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모든성인호칭 기도의 전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성인 호칭 기도는,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천사들, 갖은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의 어느 .. 2016. 9. 5.
삶을 이해하는 Framework 삶을 이해하는 Framework 컨설팅 회사라는 곳에서 한 10년을 일했습니다. 종종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분석하고 진단하는 일을 하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에 체계적인 생각을 돕기 위해 기업 운영에 대한 여러가지 상세한 프레임워크를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또 새로운 진단 방법을 접할 때마다, '이런 진단 방법'들을 적용하여 우리 자신의 삶을 다면적으로 보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는 질문을 조각조각 내어서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삶이라는 것을 결국 돈, 건강, 사람들과의 관계, 영적 생활, 취미나 패션 등등으로 조각내어, 자기의 목적이나 살고 싶은 방향에 맞춘 파인튜닝을 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정량적으로 스코어를 매겨서 만족도를.. 2016. 9. 4.
그래도 우리는 정원을 계속 가꾸어야 한다. "Il faut cultiver notre jardin." - Voltaire, Candid"그래도 우리는 정원을 계속 가꾸어야 한다." 어느 덧, 마흔을 넘기고, 다시 가을이 왔습니다. 유독 가을이 뭔가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적합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뭔가 해 보려고 했으나 계속 버려두게 되었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잡초 무성하게 버려진 정원을 다시 가꾸어 볼까 합니다. 16년 전, 생소한 HTML로 끼적끼적 홈페이지 만들어, 이것저것 내 잡동사니며 푸념을 늘어놓던 공간이 한동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었고요.남들과 더 많은 컨텐츠를 공유하고 교류했어야 할 시기에 많은 선배들의 대단한 말글 솜씨에 오히려 더 위축되어, 혼자만의 공간에 파묻혀 있기도 했습니다. 결국 뭔가 쓸 수 있는 말도 줄어.. 2016. 8. 27.